조만간 세계 26%가 소비할 식품, 할랄(HALAL)

최근 무슬림의 할랄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2월 현재 전 세계 할랄시장의 규모는 2,3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할랄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슬림은 2030년 세계 인구의 26%인 22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할랄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슬람 경제권, 즉 할랄 시장이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할랄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근거한 윤리관에 부합해야 한다. 샤리아에 부응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취급하는 비즈니스만이 무슬림에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할랄은 생산에서부터 가격 책정, 유통, 광고, 소비 등 모든 과정이 샤리아에 부합해야 한다. 기업은 할랄 제품의 생산과정뿐 아니라, 가격 측면에서도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속여서는 안 된다. 

이슬람에서는 쉽게, 또는 일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는 불로소득을 금기시한다. 그렇기에 이자를 받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제품의 유통에도 할랄과 하람을 엄격히 적용한다. 할랄 제품이 하람 제품과 섞이면서 오염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정 제품이 할랄이라 하더라도 하람 제품을 함께 생산한다면 그 제품은 판매하기 어렵다. 

무슬림들이 제품의 질보다는 생산과 유통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최근 이슬람 물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할랄 비즈니스의 가장 근본적인 윤리는 이익창출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를 존중하고 이슬람이 제시한 규칙과 규율을 준수하느냐 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알라의 규율을 따랐느냐를 기준으로 비즈니스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엄익란이 쓴 <이슬람 마케팅과 할랄 비즈니스>에 따르면, 이슬람 브랜드 및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오길비누어는 상품에 따른 무슬림의 할랄 인지도를 분류했다. 

샤리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과 샤리아 부합을 중요시 하는 것, 그리고 샤리아를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나는 것이다.

 

샤리아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하는 것으로는 몸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특히 위생이나 안전과 관련된 제품으로 음식, 낙농 유제품, 음료, 구강 관리 제품 등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샤리아에 부합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하는 것으로는 스킨케어, 헤어케어, 바디케어 용품, 옷이나 액세서리를 비롯한 패션용품, 일상적인 금융상품을 포함시켰다.


마지막으로 샤리아를 준수하지 않아도 소비가 가능한 것으로는 항공사를 비롯해 호텔, 여행, 관광, 대출, 보험상품 등이 있다. 

이처럼 이슬람 사회에서는 비즈니스에도 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시에 현대적 소비문화에도 관심을 갖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할랄 비즈니스의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과거 할랄 비즈니스는 주로 무슬림이 먹고 마시는 문제, 즉 식음료 분야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패션을 비롯해서 의약품, 화장품, 관광, 금융, 물류에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한 이슬람 국가에서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할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비무슬림이 생산·유통하는 모든 할랄 제품과 서비스도 포함된다.


할랄 비즈니스의 대표 주자는 식품이다. 21세기 전 세계 먹거리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할랄 식품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58억 달러에 불과하던 할랄 식품은 현재 전 세계 식품시장의 17.7%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9년까지 연평균 11.9%의 성장률을 보이며, 2조5천37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할랄 식품시장의 확대에는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경제력 향상의 영향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할랄 식품에 대한 믿음이 한몫했다. 

원재료의 환경성 및 안정성, 그리고 다양한 검증방법을 통과해야 하는 할랄에 대한 믿음이 할랄 식품시장 확대의 주요인이다. 

무슬림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와 채식주의자 등 다양한 이들이 할랄 식품의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하고 있다.

 

할랄 비즈니스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이슬람 금융이다. 이슬람 금융 역시 샤리아에 부합하는 체계를 갖춘 것으로, 2000년 이후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기준 이슬람 금융의 총자산 규모는 1조6,000억 달러에 달하며, 70여 나라에서 300개 이상의 이슬람 금융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슬람 금융의 가장 큰 특징은 이자 수취를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금리의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또 불확실하거나 실체가 없는 거래를 피하기에 선물, 옵션, 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금융상품은 부동산이나 기계 설비 등 실체가 있는 거래에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다.

 


오일머니의 영향력과 무슬림 인구의 증가, 그리고 증산층 증가 등이 이슬람 금융의 성장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다른 요인은 소비자들의 이슬람 금융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2000년대 후반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 기존 금융권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이들이 모든 손실과 이익을 공유하는 이슬람 은행의 윤리관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는 할랄 비즈니스도 커다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지역과 법학파에 따라 할랄 기준이 다른 탓에, 표준화된 할랄 인증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에 250개 이상의 할랄 인증단체가 산재해 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통합된 할랄 인증기준 마련이 이슬람 사회의 시급한 과제이다. 할랄 인증기준뿐 아니라  인증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표준화된 인증 기준과 가격이 없는 것은 할랄 인증을 종교적 문제로 간주하여 정부가 개입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틈새시장을 파악하고, 할랄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나라가 말레이시아다. 

최근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라는 지위를 이용해 국가적 차원에서 표준 할랄 인증제도 도입에 나섰다. 

말레이시아는 할랄 인증에 대한 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표준화해 전 세계 할랄 인증의 중심이 되려는 프로젝트를 정부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는 국제 할랄 허브가 되려는 전략을 세우고 지난 2006년 할랄산업개발공사(HDC)를 만들었다. 

전국에 20여개가 넘는 할랄파크를 추진하면서 할랄 산업분야의 외국인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또 아랍계 할랄 식당을 체계적으로 육성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 중동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에 맞서 아랍에미리트(UAE)는 2014년 10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연방표준청인 ESMA가 관리하는 할랄 로고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걸프 6개국의 할랄 인증기준 통일과 전 세계 57개국 무슬림 회원국(OIC)의 할랄 인증표준도 주도하고 있다. 

한편 세계 최대의 할랄 시장인 인도네시아도 2014년 9월 제정된 ‘할랄제품보장법’을 통해, 2019년 이전까지 모든 식품에 대해 할랄 인증을 받도록 규정했다.

 


한국에서는 최대의 이슬람교단인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가 유일한 국내 할랄 인증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설미비와 전문인력 부족 등 세계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해외 할랄 인증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기문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 전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귀국이후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만나고 민심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종교 사회 정치계의 여러 분들의 말씀을 들었다 모든 분들은 정치경제사회안보 모든 부분에 위기에 처해있고,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여기에 국가 리더십의 위기가 겹쳤다. 

이런 민생과 안보 난국 앞에서 국민들에게 믿고 맡긴 이해관계에만 몰입해 급급한데 대해서 많은 분들이 개탄과 좌절감을 표현했다.    

제 우려가 피부로 와 닿았다. 

전 세계를 돌면서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를 보면서 미력이나마 정치에 투신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협치와 정치의 포부를 말씀드리려는 것. 이것이 제 3주간의 제 짧은 심정이었다. 

허나 그간 인적살해에 가까운 음해에 저와 제 가족 그리고 10년간 봉직했던 유엔과 국민에 큰 누를 끼쳤다. 

구태적인 이기주의적 편협한 태도도 심각히 실망스러웠다. 같이 가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저는 접겠다고 판단한다. 혹독한 이러한 결정을 한데 대해 너그러이 양해 바란다. 

오늘의 결정으로 그동안 저를 열렬히 지지해주신 분들과 따뜻한 지지를 보내신 분들에 대해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제가 이루고자 했던 꿈과 비전은 포기하지 않겠다.

제가 해결하겠다는 나 아니겠다는 유아독존식의 태도를 버려야한다.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간의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도 투신하겠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월 1일 3시 30분경 갑자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덕분에 그날 주식시장은 반기문테마주에 돈을 넣은 개미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반기문은 1월 12일에 귀국하면서 여러 짤을 만들면서 약 보름이 넘는 기간동안 전국 팔도를 줄기차게 돌아다녔다.

귀국 후 공항철도 티켓 이만원 짤, 보는 이마저 아찔하게 만드는 노인죽 먹여드리기 짤, 퇴주 받아 마시기 짤, 마스크도 안한채 소독약을 뿌려대는 노인짤 등 

좋던 나쁘던 대중들에게 인식을 남겼다. 

하지만 귀국 초반 지지율을 시간이 지나면서 쭉쭉 떨어지면서 가능성이 없다는걸 느꼈는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반기문 대선 불출마를 통해 황교안, 유승민, 안희정, 이재명 등이 오히려 뒤늦게나마 주목을 받는것 같다.


오늘이 (1980년)5월 23일, 이른 아침이군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길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최후의 날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내 소회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는 금번 1심 2심 3심, 즉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 재판까지 3심까지를 거칠 예정이었는데 

난 또 한차례의 재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제4심인데, 제4심은 바로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호사도 필요없고 판사도 필요없어요.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그러한 재판만이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명확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나는 이미 이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목격했던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이 되고 그것이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들 이렇게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물결은 세차게 흐르기 시작해서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있다, 이것은 천하 공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어서 순조롭게 민주회복이 돼나가지 못하고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며 천하의 대세는 사람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이런 비유를 하나 들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던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겠느냐.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회복에 있어서도 나의 희생없이 이 나라의 민주회복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보장되었다고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고마움을 애절하게 느끼는 부류의 국민들도 있고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자유민주주의가) 필요하지만 (그 필요성을)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부류도 없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죽음, 즉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동시에 자유민주주의가 절대 필요하고 자유민주주의는 절대 회복돼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전체 국민이 아주 확실히 깨닫게 되고 또 그것을 확실히 자기 몸에다가, 목에, 자기 가슴에다가 못박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번에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민주주의 나무의 거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또 보람으로 생각하고 매우 즐겁습니다. 

나의 심정을 바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바로 나의 뜻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리고 내가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집권욕을 가지고 10·26 혁명을 했다, 

이러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사를 담당했던 분들이라든가 혹은 재판을 담당했던 분들, 또 일부 유신체제의 중요한 위치에 밀착되어 있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만 (내가) 집권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직 대통령을 희생시키는 일을 하면서 그 국가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그 집권이라는 문제는 내가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특히 나는 10·26 혁명을 사실은 1973년 10월, 즉 10월유신이 반포되고 헌법이 반포된 직후에 그 헌법을 보고 그때부터 안 되겠다, 


이 유신체제는 독재체제인데 이것을 깨야 되겠다고 이미 발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나는 네 차례에 걸쳐서 여러 번 이 혁명을 구상했었고, 


또 이런 물리적인 혁명에 의한 방법이 아닌, 그야말로 박대통령 스스로가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기 위해 수백번 건의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러나 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는 부득이 내 목숨 하나를 바치고 그렇게 해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추호도 집권욕을 가지고, 집권을 하기 위해서 나의 가장 가까웠던 대통령을 희생시켜 가면서 (10.26 혁명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나의 진의를 그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간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백 번 죽어가도, 내가 집권을 하기 위해 대통령을 희생시키고 혁명을 했다는 것은, 

내가 하늘에 맹세하고 말하건대, 그러한 일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고마움, 민주주의의 귀중함, 또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또 우리가 민주주의를 등한히 하면 꼭 민주주의는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진다고 하는 것, 

그런 경우에는 또다시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우리 국민들이 이해를 해주셔야 됩니다. 

나는 국민들에게 이것을 간곡하게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이 대세가 어떤 일부세력에 의해 가로막힌다는 것, 이것은 국가적으로 볼 때, 국민 전체적으로 볼 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분(국민)들이 빨리 눈을 떠서 감정을 초월하고 정말로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을 해서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어떤 길이 정도이고 어떤 길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바른 길인가 하는 것을 빨리 깨달아서 국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빨리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정치적으로 혼란이 오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모든 발전이 저해가 되고, 

또 국민의 마음은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어떤 불행한 결과를 자아낼는지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자유민주회복을 위한 우리의 대혁명을 가로막는 이러한 세력들에 대해 진심으로,

 마지막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개인의 감정을 초월하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튼튼한 국기(國基)를 위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똑바로 파악을 하고 판단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안 되기를 희망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희생이 후에 또다른 희생으로 파생될지 모릅니다. 

그러한 불행이 제발 없어지기를 나는 진실로 바랍니다. 

소위 민주회복을 하고 난 이후 이 나라의 민주회복이 무엇 때문에 이리 늦어졌느냐, 또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병들었느냐, 

우리 국민들은 민주회복이 되고난 후에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심판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나는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이 재판의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참고적으로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일본에 과거 5·26 사태니 2·26 사태니 하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때 그 사람들은 장교들만 책임을 지웠지 하사관과 병(兵)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잘하고 잘못하고 하는 문제를 초월해서 군대라고 하는 조직이 유지되는 데 있어서는 그 역경에서 전쟁을 수행할 적에 부하들이 명령을 선택적으로 받아서 수행한다고 하면, 만일 이러한 기풍이 있다고 하면 군대는 존립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서 부하라고 하는 것은,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관계가 아니면, 군대의 명령계통이라는 것은 존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상관이 명령을 했을 때에 이것이 정당한 명령인가 아닌가 판단을 해서 정당할 적에만 내가 이행을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해봅시다. 전쟁에서 만일 어떠한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적을 보고 총을 쏘라고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신에 입각을 하면 나는 총을 쏠 수가 없다고 해서 거절했다고 합시다.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조그마한 비유에 불과합니다만,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권을 가진 것이지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안 받아들여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요번에 이 혁명을 결행하기 위해 내 부하 6명에 대해 강력한 명령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명령을 100%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가지고 아주 완전히 자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나는 이것은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재판과정에 있어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명령을 한 나와 명령을 받아 가지고 이행한 이 사람들의 관계는 충분히 정상참작이 돼 판결이 됐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금요일입니다만, 내 영감으로 마음에 잡히는 것은 내일 토요일, 내일이 오전밖에 일이 없으니까 내일 오전중에 나의 형을 집행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내 영감으로 잡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염려없이 아주 유쾌하고 명예스럽게,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자부와,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즐겁게 갑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발전과 10·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1980/05/24 김재규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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